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르빈 롬멜 (문단 편집) == 기타 == 롬멜이 아프리카 전선에서 쓰던 고글은 독일국방군 정식 보급품이 아닌 영국군의 방풍 고글을 노획한 것이라 한다. 당시 아프리카군단 병력들은 사막의 모래바람을 [[방독면]]을 써서 막았다고 한다. 대외적인 대인관계는 어쨌던 간에 가족에게는 자상한 인물이어서, 아내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에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간 게 그 예인데, 연합군 상륙 보고가 들어올 당시 집에 있던 롬멜은 잠옷 바람으로 아내에게 줄 깜짝 선물을 숨겨두느라 끙끙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선에 있을 때도 아내한테 "사랑하는 루셰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를 보냈다. 그중 한 통이 >사랑하는 루셰에게. 상륙 후 어떤 장애도 받지 않고 쾌진격을 거듭하고 있소. 아군의 사상자는 극히 경미하며 포로나 전리품은 셀 수도 없소. 기쁨에 밤잠을 못 이루는 내 마음을 당신도 알 거라 생각하오. 덕분에 후세 역사가들은 당시 아프리카 군단의 자세한 상황과 더불어 롬멜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지극한 사랑은 친아들 만프레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만프레트가 수학을 잘한다니 참 기특하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지금도 남아 있고 이에 더해서 사생아 게르트뤼트에게도 나름대로 정을 보였다. 그래서 일부 역사가들은 "롬멜이 군인으로의 삶 외에 애정을 가진 대상은 아내와 아들뿐"이라고도 평한다. 다만 이는 전후에 롬멜 관련 서적이 많이 출간되면서 널리 알려진 사실일 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대부분의 독일군 장성들이 집으로 보낸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담겨 있다.[* 당연하지만 이건 일반, 말단 병사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전투 후 연합군들이 독일군 시신들을 조사할 당시 그들의 주머니나 품 안에는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고향에 있는 가족들 사진, 혹은 아직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가 가득했다고 한다. 사실 이렇게 강조할 필요도 없는 서술인 게, 개막장 부모나 패륜아가 아니고서야 죽음과 피가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징병 이전에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인 것이 당연하다.] 특히 아들의 나이가 아직 20대가 아니어서 군에 입대하지 않은 소년인 경우는 그러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에리히 폰 만슈타인]]과 [[하인츠 구데리안]]처럼 20대의 장성한 아들이 같은 전선에서 종군하고 있는 경우에도 아버지로서의 애정은 매우 지극하다. 그리하여 종전 후 상당한 시간이 흘러 이러한 일선의 장교들이 집으로 보낸 편지에는 전선의 상황이 상당히 직접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중요한 사료로 취급되고 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괴벨스]]가 상당한 양의 편지를 검열 후 압수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가족들에게 전해진 편지들을 보면 아내와 자식, 부모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으며 '승리 이후의 평화'를 간절히 기원하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다. 수도 없이 언급된 말이지만, 롬멜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는 연합군 장교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아들인 만프레트 롬멜은 1944년 [[루프트바페]]의 [[방공포병]] 보조원으로[* 나치의 탁월한 거짓 선동을 믿어온 그 당시 청년들 답게 무장친위대에 근무하기를 희망했으나 아버지인 롬멜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무하다 [[대체복무]]인 [[https://en.wikipedia.org/wiki/Reich_Labour_Service|국가노동자단]]에서 종전시까지 병역을 마쳤고, 이후 20년간 슈투트가르트 시장으로 재직하였고, 과거의 적국이었던 프랑스로부터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도 받았다. 그 이유는 어찌되었건 '''롬멜은 히틀러가 죽였으며''', 영미 연합군과의 전투는 동부 전선에 비하면 굉장히 신사적이었기 때문에 연합군 측의 주요 인물에게 호감을 샀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용해서 만프레트 롬멜은 십대 소년 시절부터 열심히 아버지의 변호를 했고, 그게 먹혀들기도 했다.[* 정작 롬멜 부인은 '뷔르템베르크의 아들은 결코 반란을 역모하지 않는다.'며 남편이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다는 주장을 적극 부인하였고, 롬멜 신화 정립에 앞장선 한스 슈파이델을 배신자라 칭하며 만나지 않았다.] 다만 만프레트는 결국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80년대에 그를 만난 전사학자는 만프레트가 아버지 롬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어쩔 수 없어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워낙 유명한 장군이다 보니, 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여러 서적이 번역 출간되었다. 한국에는 롬멜의 일기와 회고를 롬멜의 아들 만프레트와 [[리델 하트]]가 엮은 《롬멜전사록》이 번역되었으며 작정하고 '롬멜을 이해하기 위해 쓰여진 책'으로 필립 마우리체 레미의 《롬멜》이 있다. 기타 다른 책이 있긴 하지만 참고문헌이 빈약하거나 일방적인 롬멜 찬양 수준이거나 해외보다 '''국내에서 많이 팔린''' 서적이다. 해외에서의 최신 연구를 반영하여 롬멜 비판을 제대로 다룬 책은 국내에 없다시피 하며 《[[전격전의 전설]]》이나 《보급전의 역사》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롬멜의 부정적 면모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조지 S. 패튼|패튼]]과 [[버나드 로 몽고메리|몽고메리]], 롬멜을 함께 다룬 책을 모두 읽어보길 권한다. 마지막 책은 특별한 호오의 입장을 보이는 바 없이 3국 왕따열전 수준이다. [[http://panzerbear.blogspot.com/2012/04/2012.html|『패튼과 롬멜』, (일조각, 2012)]]이란 말 그대로 [[조지 S. 패튼|패튼]]과 롬멜을 다루는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인 데니스 쇼월터는 영미권 군사학계에서 독일군 관련 연구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 학자인데, 본서는 롬멜을 비롯한 독일군 지휘관들의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인 2005년에 출판된 책인 만큼 롬멜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2012년]] 독일 [[ARD]] 방송국에서 그에 관한 TV 영화가 제작되었다. 꽤 공들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살펴보자. 이 영화는 후에 CNTV에서 더빙판으로 방송된 적이 있고, 2020년 05월 기준 유튜브에 자막이 달린 영화가 등록되어 있어 원한다면 감상할 수 있다. 유튜브 검색창에 롬멜이라고 입력하면 상위에 나온다. 롬멜에 관한 일화. 영국군 기관총 진지에 돈좌된 독일군 분대장을 누군가 뒤에서 두들기자 분대장이 돌아봤는데 롬멜이었다. "지금 여기서 뭘 하나?", "적 기관총 진지에 고전 중입니다." 그러자 롬멜은 상체를 내밀어 기관총 진지를 살펴보더니 "별 거 아니군. 당장 돌격해 제압하라." 잠시 후 독일군 분대는 고함을 지르며 기관총 진지로 돌격했고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이 그 진지를 제압했다.[* 출처: 리더스 다이제스트.] 다른 유명한 야사로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미군의 노획품을 점검해보니 보급품에 모자란 것이 없었고, 심지어 한 미군 병사가 어머니로부터 배달받은 신선한 [[초콜릿 케이크]]까지 있어서 미군과의 전쟁에서 희망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군의 뛰어난 보급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이야기라 '벌지 대전투' 같은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내용인데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그렇듯 출처는 불명이다. 롬멜이 미군과 북아프리카에서 제대로 교전한 건 카셀린 협곡의 전투뿐이며, 곧 보직에서 해임됐기 때문에 미군의 보급이 월등하단 걸 체감했을 공산은 미비하다.[* 다만 알람 엘 할파에서 독일군이 영국군의 수비에 제지되어 고생할 때 히틀러를 만나 미국의 지원을 받은 영국이 모든 면에서 독일군을 압도한다고 말한 기록은 있다. 이때 공군이 진다는 것을 참아넘길 수 없던 괴링이 끼어들어 '미국은 면도날이나 만드는 나라'라고 하자 롬멜이 '''우리는 그 면도날이 필요하다'''라고 받아친 것이 그것이다. 정작 괴링이 미국을 무시하면서 언급한 면도날마저도 꽤나 고수준의 공업기술을 갖춘 나라만 제작 가능한 물건이다.] 롬멜에 관해서는 한 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롬멜의 황금", 혹은 "롬멜의 보물"이 그것. 롬멜이 북아프리카에서 재직하던 시절, 유대인들에게서 각종 귀금속과 역사 유물들을 약탈했고 이것을 사하라 사막이나 코르시카섬 어딘가에 숨겼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지금도 이 이야기를 믿는 보물 사냥꾼들이 일대를 뒤지고 다닌다. [* 동쪽에도 [[야마시타 도모유키]] 장군이 비슷한 짓을 했다는 "야마시타 골드" 도시전설이 있다. 롬멜과 야마시타가 모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전쟁 범죄에 관여된 바는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묘한 일이다.] 롬멜이 총애했던 군인인 [[한스 폰 루크]]의 자서전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의 내용에서 1943년 한스 폰 루크가 북아프리카의 군대를 후퇴시키려는 작전의 승인을 위해 [[구데리안]]을 포함해 [[알베르트 케셀링]], 루돌프 슈문트 등 여러 장성의 사인을 받으려 돌아다닐 당시 구데리안의 제안으로 퓌어 야레스자이텐 호텔에서 롬멜과 구데리안의 회동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롬멜(Unser Rommel)이라는 아프리카 전역에서의 활약을 선전하는 군가가 있는데, 원본은 [[유튜브]]의 정책으로 검열당하기 때문에 악기 버전만 남아있다. [[알트센서드]]에 [[https://www.altcensored.com/watch?v=MN6NA2YHMko|백업본]]이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